이달의 인물: 김후진 명장은 어떻게 ‘대한민국 최연소 명장’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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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진 명장은 어떻게 ‘대한민국 최연소 명장’이 됐나?
전국 곳곳 대학 강의 중…후학양성 위해 ‘고군분투’

두산DST㈜ 명장/기술사 운영총괄 품질경영 품질기획팀 팀장 김후진
Doosan DST Co.,Ltd. Professional Engineer Process and products Quality Assurance Team Hoo-jin Kim

“이 옷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옷이 아니야. 이태리에서 40년 동안 트레이닝복만 만든 장인이 한땀~한땀~ 수 놓아 만든 트레이닝복이라고” 올해 초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의 명대사 중 하나다. 그렇다. ‘장인(匠人)’이란 칭송 받는 것이다. 그 장인이 트레이닝복을 만들던, 잠옷을 만들던, 장인이라면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 그리고 장인의 능력은 결코 객관화 될 수 없고, 계량화돼서도 안될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산업 혁명 이후 제조 과정이 갈수록 기계화, 자동화 돼가면서 장인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장인으로, 그리고 기능인으로써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근래 들어서 그나마 그 편견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회 깊숙한 곳에서는 편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장인은 전문성을 잣대로 평가한다. 하지만 전문성 외에도 창조성, 도전성이라는 개념이 내포돼있다. 남이 했던 것을 뛰어 넘으려는 것, 남과 다른 경지를 보여주려는 개척정신, 이 모든 것을 갖춰야만 진정한 장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은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워서 회피한다는 ‘3D 산업’. 하지만 이 분야에서도 소신을 갖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장인’에 이른 이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 용접저널에서는 이 모든 정신을 내포해 지난 1999년 용접계에 당시 41세라는 나이로 ‘대한민국 최연소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두산DST㈜ 품질기획팀장 김후진 명장(53)을 소개해볼까 한다. ‘대한민국 최연소 명장’, 참으로 거창하고 화려한 타이틀이다.
하지만 이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당사자는 그 누구보다 더 한 노력을 했을 터. 그래서 이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김후진 명장이 흘린 수 많은 땀과 눈물의 색을 들여다봤다.

疾風怒濤(질풍노도): 방황했던 청소년기
1958년 경기도 용인의 한 방앗간 집에서 맏이로 태어난 그는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당시 방앗간 집이라 하면 우스개말로 슈퍼 집, 정미소 집과 함께 시골의 ‘3대 부자’ 중 하나로 통했다.
하지만 그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때부터 아버지의 사업 확대는 여간 신통치 않아 그의 유복한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고, 이와 함께 공부도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사춘기 시절, 누구나 겪게 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지 못했고, 결국 고고장을 전전하며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이 같은 그의 방황은 잡아준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바로 그의 의지였다. 타고난 성품인지, 그는 자신을 찾겠다고 마음을 다잡자마자 인생의 ‘로드맵’을 그려나갔다.

有志竟成(유지경성): 결국 용접이었을 것
김 명장은 지난 1977년 한백창원직업전문학교에 1기생으로 입학했다. 1지망 기계·가공과정에 응시했지만 떨어졌고 2지망인 용접과정에 다니게 됐다. 그가 만약 1지망 과정에 합격했다면 그의 인생은 과연 달라졌을까? 그의 눈빛을 보고 내린 결론은 ‘그래도 결국 용접이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결국 용접이었을 것’이다.
충실히 직업훈련을 마친 뒤 김 명장은 대우중공업(현 두산DST㈜)에 특채로 입사했다. 잠시 방황한 시간의 몫까지 배 이상으로 쏟아 부은 노력의 결실이 맺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기술을 인정 받아 각종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경남 대표선수로 나서게 됐고 우수한 성적을 거둬냈다.
하지만 이 같은 그의 활약에도 ‘용접인’에 대한 결코 곱지만은 않은 시선은 변하지 않았고, 이 같은 현실을 벗어나고자 김 명장이 선택한 것은 미처 다하지 못했던 ‘공부’였다. 김 명장은 이후 고행하듯 공부에 매달렸고 마침내 1981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1986년 한국폴리텍Ⅶ대학 산업설비학과를 졸업했다. 이론에도 눈이 트이게 된 것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07년에는 국립 창원대 산업정보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친 김 명장은 현재 박사 학위를 목표로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김 명장은 현재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박사학위만 취득하면 기능계-기술계-학계를 휩쓰는 ‘3관왕’이 된다. 김 명장은 이 같은 전철을 밟음과 동시에 자신의 같은 길을 밟으려는 후배 용접인을 양성하는 데에도 전력투구하고 있다.



苦盡甘來(고진감래): 쾌거를 맛 보다
세상에 가장 공평한 것이 있다면 바로 ‘시간’일 것이다. 시간은 권력자라고 해서, 부자라고 해서 더 많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대통령에게도, 집 지키는 개에게도 똑같이 주어진다. 다만, 그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는 본인의 몫이다. 이에 따라서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김 명장은 단순히 기술을 연마하고 전수하는 것을 넘어서 용접관련 신기술 개발에도 큰 몫을 해냈다. 김 명장은 지난 2005년 알루미늄 용접기술을 접목시켜 모노블럭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연간 500억 원 가량의 수입대체 효과는 물론, 반도체 부품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국내 최초로 품질을 체크하고 관리하는 3차원 정밀장비를 사용해 중대형 구조물을 설치할 때 구조물의 이동을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는 베어링 장치인 레벨링 블럭을 개발해 발명특허를 등록함으로써 산업재산권 보호와 해외시장 진입으로 연간 수백 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올렸다.
그리고 로봇이 일하는 특수용접 공정의 자동화 시스템도 구축해 안전성 확보와 불량률을 대폭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수백 억 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 명장은 용접 관련 개술개발에도 기여하면서 ‘용접사(史)’에 한 획을 그었다.
특히, 김 명장이 그동안 갈고 닦은 용접기술을 ‘한~땀, 한~땀’ 책으로 엮어 1995년 출간한 ‘특수용접의 이론과 실체’는 전국 수 개의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될 만큼 관련 분야 최고의 기술서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이러한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그 기술력을 인정 받은 김 명장은 지난 1999년 41세의 나이로 대한민국 최연소 명장으로 선정됐다. 이후 2001년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이어 2004년에는 ‘제1회 평생학습대상’ 개인부문 대상과 노동부 신지식인 제1호에 선정되는 쾌거를 안았다.

敎學相長(교학상장): 후학 양성에 기 기울이고파
김 명장은 용접을 물려받을 인재가 많지 않다는 데 크게 우려를 표했다. 김 명장은 “요즘 젊은 세대에게 산업현장의 인식을 좋게 심어주기 위해서는 기능인으로써 삶이 가치 있고 비전 있는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전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펼치고 있는 데에는 이 같은 이유도 큰 몫을 했다.
김 명장은 용접기술 개발과 함께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을 후학들에게 물려주고 공유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소신 있게 밝혔다. 현재 김 명장은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후학양성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강의를 마칠 때마다 드는 기분은 항상 ‘뿌듯함’과 ‘기대감’이라고. 자신의 강의를 통해 누구 하나라도 자신과 같은 길을 걸으려는 이가 있다면 그야말로 “제 할 일을 다 한 것”이라고 했다.
용접산업에서의 인력부족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누구 하나 나서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면서 앞으로의 전망도 힘든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 명장은 “우리나라의 청년실업은 지난 1997년 IMF사태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사회적 문제로 야기돼왔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어 “하지만 이는 결코 사회적 문제라고 할 수만은 없다”며 “청년실업자 중 많은 수가 취업을 ‘못’하는 것이 아닌, 취업을 ‘안’하는 ‘자발적 실업자’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현 세태를 꼬집었다.
이 말인즉슨, 대학 졸업자 등 구직자들이 생애 첫 직장을 ‘대기업’, 혹은 ‘괜찮은 곳’으로 시작하기 위해 본인 스스로 취업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계층으로 사실상 일자리가 없어 실업자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 김 명장은 지난 2010년 7월 지식경제부에서 열린 ‘뿌리산업 명장과의 간담회’에서 당시 장관이었던 최경환 전 장관으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그러면서 “편한 직업은 수명이 길지 못하다”며 “뿌리산업은 도전정신과 집중력을 지속적으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분야”라고 뿌리산업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다.
김 명장은 “현재 젊은 세대는 용접 자체를 3D산업으로 인식해 기피하고 비전이 없는 일자리로 치부해버리고 있다”며 “이를 인식하고 용접사를 필요로 하는 각 업체에는 정부 차원에서 인재육성 지원이 일정부분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직자들 자체의 인식변화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취재.정리: 용접저널 취재부 김가애 기자(Journalist Kim Ga Ae)
제2회부산국제용접&절단&레이저설비산업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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