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인물: 유재권 ‘용접계 신참’, 날개피고 비상을 준비하다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 제휴.제안&광고문의: Copyright ⓒ 월간 [용접저널]
‘용접계 신참’, 날개피고 비상을 준비하다
수 차례 실패 거듭하고도 ‘도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한전KPS㈜ 영남지점 기계팀 용접조장 유재권
KEPCO Plant service & Engineering Co.,Ltd. Yeongnam Branch. Machinery team Welding Chief Engineer Jae Gwon, You
도전하고 꿈을 이루는 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 나이가 이르든, 늦든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그 도전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뤄냈다면 그것은 바로 ‘성공’이다. 한 유명인은 시도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회피한다고 해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어려움은 반드시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에. 이처럼 인생은 절대 순풍에 돛 단듯 흘러갈 수 없다.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이 인생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생겨난다.

이번 호에 소개할 인물은 ‘살짝’ 늦은감이 있는 나이에 이제 막 용접을 시작한 한전KPS㈜ 영남지점 기계팀의 유재권 용접조장(34). 그의 이름이 많이 낯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용접인’들 사이에서는 아직 ‘신참’이다. 하지만 실패를 인생의 소중한 자산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도전으로 살아갈 힘과 큰 기회를 통해 당당히 ‘성공’해낸 그의 지금까지 인생은 여느 ‘거물급 용접인’ 못지 않다.

이를 통해 현재 용접인의 길을 걸으려는 이들과, 혹은 종사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현재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귀감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수기’ 공모전에서 ‘용접사 류대위’라는 제목으로 당당히 최우수상을 거머쥔 ‘따끈따끈’한 수기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성공과정을 담아봤다.

근자감’에 무작정 전쟁터로...
충남 예산의 한 시골마을.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던 평범한 가정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유재권 씨는 그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고향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고려할 때, 그는 그다지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형편을 생각해 지역 국립대를 진학했다.
그리고 그는 집안에 조그만 보탬이라도 되고자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나름대로의 만족스러운 대학생활을 마치고 취업을 고려해 학사장교를 지원하게 된다.
“7년 간 군 생활을 마치는 동안에는 용접을 업(業)으로 하리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그가 군 생활 중 줄곧 들었던 말은 “유 대위는 사회에 나가서도 잘 적응할거야”라고. 아마 그만큼 그의 생활이 성실했을 터. 이 때문이었을까? 그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뜻의 신조어)’으로 똘똘 뭉쳐 전역을 하는데...
‘7년 간의 군 생활과 권위주의적 사고를 가진 지방대 출신의 어리지 않은 사회 초년생’. 딱그다. 어쩔 수 없이 그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군을 전역하니, 또 다른 ‘총성 없는 전쟁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국의 취업준비생들이 겪는 고통을 그 역시 겪어야만 했는데, 그 중에서도 그를 절망으로 빠뜨렸던 건 전역 후 군 관사를 비워줘야 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는 책임질 가정이 있다는 것. 그의 힘으로 지켜야 할 아내와 12개월 된 딸이 있다는 것이었다.

보험설계사→자동차딜러→휴대폰판매원→쇼핑몰사장... 그 끝은?
한참을 힘들어하던 중 그는 전역 후 보험 설계사를 하고 있는 선배 장교를 만나게 된다.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며 보험설계를 하는 선배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봐왔던 그였기에 그 일만은 하고 싶지 않았을 터. 어차피 찾아가서 부탁을 할 곳은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사정은 그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게 만들었고, 결국 ‘사랑의 전도사이며, 군 생활 동안 다져진 무한한 책임감으로 진정한 고객감동을 실천해 성공할 수 있다’는 선배의 권유를 받아들이고, 보험영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직장도 정해졌겠다, 마침 퇴직금과 모아둔 돈과 대출을 더해 수도권에 작은 평수지만 아파트도 장만했겠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게 된 것 같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보험영업을 시작하면서 하면서 초기에는 많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자리를 잘 잡아가는 듯 했다. 그리고 동창모임, 고교 선후배 모임, 향후회 등등 모임이란 모임을 나갈 수 있는대로 나갔고 잦은 지방출장, 많은 술자리 등 점점 심신은 지쳐갔다.
그렇게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던 중, 세계적 경제위기였던 ‘리먼사태’가 발생했고, 그간 계약이 줄줄이 해약되기 시작하면서 지급됐던 수당이 환수돼 그의 경제사정 또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수입을 창출해보고자 그간의 계약자 및 지인들의 도움으로 자동차 딜러, 휴대폰 판매원 등 닥치는대로 겸업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일에만 매달려도 최고가 되기 쉽지 않은 마당에 이처럼 한 가지에도 집중할 수 없는데 잘될 리 만무했다. 결국 마지막 무리수를 두고 마는데...
그는 지인의 도움으로 유아용품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하게 됐다. 하지만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쇼핑몰 시장에서 살아남기란 ‘하늘의 별따기’. 매출이 부진한 상태에서도 광고와 물건사입 등 유지를 위해 집을 담보로 추가 대출까지 받아서 투자를 했으나 매출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었다.
‘힘들어도 6개월만 버티면 유지는 될 것’이라는 지인의 조언과 나의 기대는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때가 이미 둘째 아이가 돌을 앞둔 시기였다.
무엇이든가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시기에 봉착했다. 여기서 더 버텨서 최악의 상황에 거리로 나 앉더라도 실낱같은 희망에 성공을 기대할 것인지, 모든걸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것인지. 그러나 전자를 선택하기에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는 “다른 어떤 것 보다도 아내에게 무책임한 가장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아내와의 상의를 통해 일단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내려가자는 힘든 결정을 하게된다.
그는 결국 가족을 이끌고 아파트를 처분해 대출금을 상환하고 남은 자금을 들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렇게 고향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내 아내와 내 자식들을 무슨 일이 있어도 고생을 시키지 않으려 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것 같아 피눈물을 토해야 했다.
고향에 내려가서도 그는 틈틈이 재기를 모색했다. 그러던 어느날. 읍내에서 우연히 ‘가스공사 맞춤형 특수용접 국비 무료교육’이라는 플랜카드를 보게 된다. 이것이 현재 그를 있게 한 ‘용접’과의 첫 인연이었다.

“장교출신이 말단 조공생활을 견디겠다고?”
그렇게 ‘용접’이라는 것은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가 자세히 알아본 결과 폴리텍 대학에서 가스공사 맞춤형으로 특수용접 교육을 1년 동안 실시하고, 수료 후에는 가스공사에 취업도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아내에게 이러한 사실을 상의했을 때, 아내의 반응은 참으로 시큰둥했다. 하지만 그는 “수료 후 가스공사에 취업도 가능하고, 꼭 가스공사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용접은 전문기술이라 취업이 용이하다”고 아내를 설득했고, 결국 아내는 “힘들겠지만 1년을 투자해보자”고 그를 또 한번 믿어줬다.
그는 “서울생활에서 겪었던 항상 부재 중인 가장의 모습과 뚜렷한 목표 없이 고향으로 내려온 후 앞으로의 경제활동이 분명 부담이었을 텐데도 다시 한번 날 믿어준 아내에게 참으로 고맙다”고 진심을 전하기도 했다.
면접을 봤던 교수는 그에게 “용접은 3D업종인데, 장교출신이 잘 할 수 있겠나?”라며 “대위는 관리자인데 제일 말단인 조공생활부터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이에 그는 “저는 육군 장교로 군 생활을 했지만, 전역 후 접한 사회생활을 통해 이 사회가 얼마나 혹독한 지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며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많은 지식을 습득하거나,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판단 하에 평생직업과 평생기술을 만들기 위해 지원했으니 꼭 뽑아달라”고 자신을 피력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폴리텍대학 특수용접 기능사 과정을 입학하게 됐다.
그동안 용접기라고는 구경도 못해본 그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그래서엿을까? 그는 소위 말하는 FM대로 연습하고, 나이성별여하를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도 지도를 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2~3개의 연습량으로 따라가는 수 밖에 없었다”며 “정말 무식하리만큼 용접에 매달렸다”는 그는 교육 중반 쯤에 누구보다도 먼저 용접 자격증을 2개나 취득했고, 용접을 배운 지 8개월 만에 용접산업기사를 포함해 3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런 ‘악바리’ 같은 모습에 모두들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마침내 이뤄낸 ‘결실’
그리고 교육 막바지에 접어들자 서서히 취업알선이 시작됐다. 배우는 것에만 매달렸던 그에게도 취업에 대해 고민할 시기가 온 것이다. 그동안의 땀방울로 결실을 맺기 위해 그는 고군분투했다.
지역 보훈지청에 제대군인 취업알선을 신청했고 채용박람회도 다녔으며 구인란이란 구인란은 모조리 뒤졌다. 그러던 중 공기업 공채모집 공고에서 용접직종 채용을 확인하게 됐다. 특수직종 모집이라 용접실기 시험이 포함돼있었으나 그는 자신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의 노력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게 됐고 당당히 최종 합격자 발표한의 자신의 이름 ‘유재권’을 올렸다.
그리고 이 과정을 힘들게 옆에서 지켜본 아내는 “그간의 고생을 모두 보상 받은 것 같다”며 감동의 눈물을 쏟아냈다.
그렇게 그가 한전KPS에 공채로 입사해 인턴과정을 거쳐 정직원으로 발령 받은지는 1년도 채 안된다. 하지만 그는 군에서 배운 역량을 밑거름으로 현재 영남지점의 용접조장으로 협력업체 직원들과 함께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해 발전소 유지보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남들보다 늦은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만큼 그는 현재에도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속적인 기술의 습득과 배움으로 회사에서 인정받는 용접사로 입지를 다지는 것이 현재 최우선 과제”라는 그는 앞으로 용접 기능장과 기술사 시험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기능인력에 대한 투자와 기회제공 많아져야” 바람 밝혀
그는 최근 용접이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려를 보였다. 용접은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산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적 ‘3D산업’으로 꼽히며 기피대상 직종 상위권에 올라있다. 이에 대해 그는 “뿌리가 더욱 튼튼해질 수 있도록 국내 기능인력에 대한 투자와 기회의 제공이 더욱 많아져야 할 것”이라고 바람을 밝혔다.
그리고 자신 역시 이제 막 용접에 첫발을 내딛은 입장에서 누구에게 조언을 해줄 수는 없지만 본인처럼 조금은 늦은 나이게 용접에 도전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막연히 주위의 소문으로만 용접을 택하겠다면 만류하고 싶다”며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할 것이라는 각오로 도전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무엇이든 쉬운 길은 없다지만, 특히 기능을 요하는 ‘용접’은 더 힘이 든다”며 “정말 바닥부터 할 각오로 임해야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같은 그의 눈빛에서는 ‘용접인’ 특유의 열정이 엿보인다. 소위 용접계의 ‘거물’들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비슷한 행보를 걷는 그의 모습에서 십 수년 후 ‘거물’이 된 그의 모습이 보여지는 듯 하다.

■ 문의: 한전KPS㈜ TEL: 052-261-0391

(취재.정리: 용접저널 취재부 김가애 기자(Journalist Kim Ga Ae)
제2회부산국제용접&절단&레이저설비산업전시회
상 호: 메탈넷코리아 매체사업부문(Metal Network Korea Company)
주 소: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 3동 212-26번지 E-Space 310호 (우편번호)152-053
문의전화번호: 02-3281-5037(代表)         팩스번호: 02-3281-0280
Copyright ⓒ 1992-2009[창립17년] Metal Network Korea Company All rights reserved.